1995. 11. 1. 『주간조선』 62-64면


<한국인,오늘의 초상> CD롬 전문가 된 동양철학자

국역 조선왕조실록 CD-ROM 개발 총지휘한 金炫 서울시스템 상무이사


李先敏 문화부 기자

입력 : 1995.11.01 16:00


  지난 26일 오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는 「조선왕조실록 국역본CD-ROM 발표회」가 열렸다.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를 4장의 CD-ROM 타이틀에 담아 컴퓨터로 볼 수 있게 만든 이 CD-ROM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전자시대에 걸맞게 되살려낸 것으로 지난 93년 작업이 시작될 때부터 학계와 국민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날 발표회장에는 이같은 관심을 반영하듯 문화체육부 민족문화추진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관련 기관의 관계자 이외에도 많은 학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간행위원장인 김도현 문화체육부 장관과 개발작업을 담당한 이웅근 서울시스템회장의 인사말, 이원순 국사편찬위원장의 축사에 이어 이날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실록 국역본 CD-ROM을 설명하고 시연하는 차례가 됐다. 사회를 보던 김병선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는 설명과 시연을 담당할 서울시스템 상무이사겸 한국학데이타베이스연구소장 김현씨에 대해 “이번 CD-ROM 개발 작업을 총지휘했으며 인문학과 컴퓨터의 지식을 겸비한 이 분야의 독보적 존재”라고 소개했다.

  이어 자그마한 체구에 날카로운 인상의 김씨가 마이크를 잡고 컴퓨터와 슬라이드를 이용해 실록 국역본 CD-ROM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대별 또는 분류색인별로 기사를 찾아가면서 각종 시각자료를 활용하고 필요한 자료를 문서편집기로 옮겨 자유롭게 편집하는 모습을 차례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김씨가 CD-ROM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검색기능으로 넘어가 인명 지명 관직명 제도명 등 각종 단어와 그 조합을 통해 4백13권의 방대한 실록 국역본에서 원하는 자료를 쉽게 찾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방청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날 참석자들의 반응은 강평 시간에 소설가 김주영씨가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여러편의 역사소설을 쓰면서 실록에서 자료를 찾는데 엄청난 시간을 투입했다』며 『오늘 실록 국역본 CD-ROM을 보면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데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약 40분이 걸린 설명 및 시연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 앉은 김씨는 실록 국역본 CD-ROM을 개발하면서 보낸 지난 2년여 동안의 일들이 생각나는듯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김현씨(36)는 발표장에서 사회자가 소개했듯이 우리나라에서 인문학과 컴퓨터 지식을 겸비한 보기 드문 사람이다. 실록 국역본 CD-ROM은 물론 민족문화대백과사전 CD-ROM, 문화재총람 CD-ROM, 한국도서문헌정보 CD-ROM등 그동안 나온 인문학 분야의 중요 CD-ROM은 모두 김씨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국내의 모든 학술자료를 화상정보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는 방대한 작업이 김씨의 지휘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 실록 원문을 CD-ROM에 담는 작업 역시 김씨가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약 70%의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인문학, 특히 국학․동양학 자료의 전산화에 있어 김씨는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본격적 개발 작업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김현씨가 일하는 사무실의 직원들은 김씨를 「김박사님」이라고 부른다. 김씨는 그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컴퓨터 분야의 박사가 아니라 고려대에서 한국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동양철학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도 철학과와 한문학과에서 한국사상사와 중국-한국의 유학관계 원전 강독을 담당하는 시간강사이기도 하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김씨의 지도교수인 윤사순교수를 비롯해서 촉망받는 동양철학자인 김현씨가 학문적 재능을 충분히 살리지 않고 「외도」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국학전산화, 한국철학 둘 다 버릴 수 없다”


  “「국학자료 전산화」와 「한국철학 연구」는 나로서는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과제였습니다. 국학자료의 전산화는 현재로서는 어쩔수 없이 내가 짊어져 야 할 과제이고 조선후기 성리학의 변모양상을 밝혀보려는 학문적 욕심 역시 포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공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김씨는 주경야독을 통해 학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현씨는 1978년 문과대에 입학했고 이듬해 철학과에 들어갔다. 학업성적으로는 서울대 입학도 어렵지 않았던 김씨가 고려대로 진학한 것은 김충렬 윤사순 교수 등으로 대표되는 동양철학의 장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 김씨는 “전통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현대 문명과 전통문화의 접점과 조화를 찾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이 때문에 고교시절부터 논어 맹자등 동양고전을 읽기 시작했고 이 방면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에 진학키로 했다”고 말했다. 문과대 특차입학 수석으로 4년간 전액장학금을 받은 김현씨는 동양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문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학시절 한문공부에 가장 큰 힘을 쏟았다. 이동환 교수가 지도하던 한문강독 서클 「동수회」에 들어간 김씨는 학기중 매일 1시간 이상, 방학중에는 3∼4 시간을 한문과 동양고전을 읽는데 바쳤다. 사회적 격동으로 대학가가 장기 휴강에 들어갔던 1980년에는 하루종일 한문공부만 할 때도 있었다.

  김현씨가 또 하나의 전공이 될 컴퓨터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상급반 시절인 1980년대 초반. 8비트 컴퓨터가 겨우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하던 당시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김씨가 남보다 일찍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공계통 고교 동창들의 영향이 컸다. 친구들의 소개로 컴퓨터의 위력에 접한 김씨는 한문자료를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컴퓨터를 배우는데 상당한 열정을 들였다.

  김현씨가 「동양학 자료와 컴퓨터의 만남」이라는 필생의 화두를 만나는 데는 1982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으로 진학한 것이 도움이 됐다.

  “당시 정문연에는 유학에서 막 돌아온 인문사회계통 학자들이 외국의 학문자료 전산화 현황을 소개하면서 한국학 자료의 전산화에 관심을 갖고 세미나를 개최하는등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컴퓨터에서 한글 처리조차 불가능했던 당시 상황에서 이같은 시도가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국학자료의 전산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지요.”

  김씨는 또 “학부시절 너무 일찍 학문적 관심을 좁게 집중시켰던 것이 아쉬웠는데 한국학대학원은 여러 분야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관심과 독서대상을 다방면으로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한다.

  1984년 2월 「任聖周의 生意철학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김씨는 바로 철학과 박사과정에 다시 입학하는 동시에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북대 철학과 조교로 일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또 이 무렵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8비트 컴퓨터를 구입해 직접 사용하는 한편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혼자 공부하는 등 단순사용자의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김씨는 또 이해 6월 대학 때부터 사귀던 부인 이순구씨와 결혼했다. 고려대 입학동기로 사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김씨와 한국학대학원도 함께 다녔으며 이곳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근무하고 있다.


국학자료 전산화 위해 과기원 들어가


  김현씨가 오늘날 국학 자료 전산화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985년 말 한국과학기술원 시스템공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간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30명 모집에 수천명이 응모한 이 모집에서 김씨는 응시 원서를 내면서 제출서류에 들어있지 않은 또 하나의 서류를 첨부했다.

  “이공계통 출신들과 서류심사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인문학도인 내가 왜 컴퓨터를 연구하려 하는가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국학자료 전산화를 위해서는 내가 훈련받아야 한다는 장문의 지원서는 서류전형을 통과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뒷날 연구소 상사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김씨는 시스템공학연구소에서 연구원, 선임연구원, 데이타베이스연구실장으로 6년반 동안 근무하면서 명실상부한 컴퓨터 전문가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아시안게임 및 서울올림픽 전산운영 시스템, 대전엑스포 멀티미디어 종합정보시스템 개발 등 국가적 과제에 참여했으며 과학기술처의 기술정보 데이타베이스, 한글 고문자 처리시스템, 멀티미디어 정보시스템, 대덕연구연구단지의 과학기술정보유통 데이타베이스 개발 등에도 종사했다. 또 예술의전당 예술정보시스템, 전쟁기념관의 전쟁역사정보 시스템 개발 등도 이곳에서 김씨가 담당한 프로젝트이다.

  시스템공학연구소에서 전산전문가로 일하면서도 김씨는 그의 최종 목표인 국학자료 전산화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1987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하는 학술지에 「동양학 자료 전산화의 구상과 과제」라는 이 분야의 선구적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자동차에 컴퓨터를 싣고 관련 연구기관들을 돌아다니며 국학자료 전산화의 필요성과 장점을 일일이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김현씨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지만 이렇게 해서 뿌려진 씨앗들은 훗날 김씨가 본격적으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김현씨가 지금 일하고 있는 서울시스템으로 근무처를 옮긴 것은 1992년 4월. 단국대에서 추진하던 한한대사전 편찬에 참여하면서 사전의 발간을 담당한 서울시스템의 이웅근 회장을 알게 됐고 그로부터 함께 국학자료의 전산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보자는 제의를 받았던 것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서울시스템은 전자출판과 신문조판 시스템분야가 주력 분야. 그러나 경제학 박사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출신인 이회장은 김씨 로부터 국학 및 고전자료 전산화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이 분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고 김씨에게 그 책임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김씨로서는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992년 3월 시스템공학연구소를 그만 둔 김씨는 이해 8월 「녹문 임성주의 철학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任聖周(1711∼1788)는 조선후기 영·정조시대에 살았던 철학자로 기일원론 또는 유기론이라 불리는 그의 철학적 입장은 주리적 입장이 주류를 이루던 조선시대 유학사에서 특이한 것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임성주 철학의 형성배경과 과정, 특성, 사회적 의미 등을 탐구한 김씨의 박사논문은 조선후기 철학사 연구의 한 성과로 꼽히며 최근 「임성주의 생의철학」(한길사刊)이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자료전산화 시스템 구축 당면과제


김씨는 박사논문을 낸 후 본격적으로 국학자료의 전산화에 뛰어들었다. 김씨가 서울시스템에서 처음 담당한 것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27권)을 1장의 CD-ROM에 담는 작업. 이 작업으로 국학자료 전산화 분야에서 서울시스템과 김씨의 위치는 확고해졌고 이어 실록 국역본 CD-ROM 개발을 비롯한 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3명으로 출발한 김씨의 작업팀은 계속 늘어나 현재 40명이 됐으며 여전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주위 사람들은 김씨에게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어려움을 지적하며 양자택일할 것을 권유하지만 김씨는 최근 자신이 두마리 토끼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문을 제대로 알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람이 많을 때 학문의 전반적인 발전이 가능하며 우리학계의 가장 큰 약점은 이런 사람이 부족한 것”이라고 김씨는 주장한다. 국학의 토대로서 자료의 전산화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자신에게 국학자료 전산화의 모든 과제가 부과되는 현실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역할을 분담하는 체계가 만들어질 때 보다 안정적인 작업과 확산이 가능할 것입니다.”

  김씨가 이같은 시스템의 구축을 당면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그렇게 될 때 자신도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김현 약력


1959년 3월 서울 출생

1978년 2월 서울 대신고 졸업

1982년 2월 고려대 철학과 졸업

1984년 2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졸업

1985년 12월∼1992년 3월 한국과학기술원 시스템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데이타베이스연구실장

1992년 8월 고려대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

1992년 9월∼ 서울시스템 이사, 상무이사